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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권, 공기 마시듯 누렷기에 인식될 수 없었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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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이동권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이제는 조금 친숙해 졌지만, 한국사회에서 2001년 처음 이동권 운동이 시작 되었을 때에는 그게뭔데. 라는 반응이 거의 대부분 이였습니다. 한번은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데 지나가던 학생이 아저씨 이동권이 뭐에요. 사람 이름인가요. 라고 물어와 동료들과 함께 크게 웃은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이 나올수 밖에 없었던건 2005년 1월(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이 재정되기 전까지 이동권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 였기 때문입니다. 국립 국어원에서 발간하는 (표준국어대사전) 신어자료집에 그 단어가 처음 등재된게 2003년 이니까요.

  이동권이란 기본적으로 출발지에서 목적지 까지 이동할 때 그 수단 및 동선을 확보함에 있어 제약을 받지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말 그대로 자유롭게 이동 할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동권은 크게 건물이나 구조물에 대한 접근권, 지하철, 버스, 열차등 대중교통 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인도와 도로 환경의 문제를 포함합니다.

  사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동하는 것도 권리야.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공기없이 살아갈수 없으면서도 골기가 희박 해 지는 순간에만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요. 즉 대다수 비장애인들은 공기를 마시듯 이동권을 누려왔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공기권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처럼 이동권을 이야기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장애인을 고려한 안전시설이나 앨리베이터가 없어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고 버스는 이용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거리의 턱과 사방팔방 설치되어 있는 계단이 아마득한 산처럼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절실한 권리 일수밖에 없급니다.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말해주는 세개의 장면

    장면 하나, 2018년 7월 2일 1호선 신길역, 전동 휠체어를 탄 일군의 장애인들이 신길역에 한줄로 늘어서 있습니다. 풀랫폼에는 장애인 이동권 이라는 문구가 적힌 관이 놓였지요. 장애인 들이 관속으로 하얀 국화 한송이를 던집니다. 이후 이들은 신길역에서 서울역까지 이동하며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더이상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다 추락해 죽는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면서요. 2017년 10월 20일, 한 중증 장애인이 신길역 환승 계단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추락해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국 이듬해 1월 25일 사망했던 것입니다. 지하철 역사의 리프트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이동을 위해 설치된 것인데, 사면이 열려있는 개방형 설비 이기에 언제든 사고가 발생 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부부중 한 사람이 사망하고 다른 한 사람은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그 이후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 송내역에서는 한 시각 장애인이 출구를 찾아 헤매다 선로로 추락했고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에 치어 그대로 사망하고 맙니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통해 방향을 찾을수 있는 유도블럭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에는 스크린 도어가 없어 선로로 추락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후 스크린도어 설치를 위한 투쟁이 시작 되었지요.

  그러나 장애인은 계속해서 같은 사고로 죽어갔습니다. 2002년 발산역에서, 2004년 부천역과 이수역에서, 2006년 신수역에서, 2008년 화서역에서, 2009년 제물포역에서, 2017년 신길역에서, 확인된 사망사고가 이 정도일뿐 중상을 입은 사고까지 헤아리면 참사의 목록은 끝도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장애인은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탈때도 목슴을 걸어야 했던 것이지요.

  장면 둘, 2019년 10월 28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광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나온 장애인과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이어 일반 고속버스와는 조금 다르게 생긴 차량이 사람들 앞에 멈춰서고, 리프트가 지면까지 내려옵니다. 이날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탑승 할 수 있는 고속버스가 시범 운행을 시작하는 날 이었습니다. 2014년 부터 설날과 추석마다 장애인도 버스타고 고향에 가고싶다. 라는 슬로건 아래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지 5년, 2005년 교통약자법이 제정된지 1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날 시승식 행사에 참여한 한 장애인은 10년넘게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며, 휠체어의 접근이 가능한 고속버스가 하루빨리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분의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군 이었는데, 이곳처럼 기차가 서지않는 지역의 장애인들은 모두다 비슷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지요.그러나 이들의 바램이 언제 이어질지는 아직 누구도 알수가 없습니다. 2020년 말 현재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수있는 버스는 전체고속, 시외버스 9000여대중 0.1%에 해당하는 단 10대 뿐 이니까요.

  장면 셋, 2020년 추석연휴 전날인 9월 29일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 50여명의 장애인이 노란 천막을 한동 친채 모여 있었습니다. 천막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님, 15년을 기다렸습니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요. 만나서 대화 하고 싶습니다. 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지요. 그렇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교통부장관이 살고있는 아파트 앞이었고, 장관이 2018년 장애계와 약속한 이동권 보장 선언문 이행을 촉구하는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던겁니다.

  이날 이곳에 모이기 위해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이 아닌 단체 승합차량이나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비장애인이라면 지하철을 탄후 버스로 환승하면 쉽게 올수 있는 곳 이였지만, 휠체어이용 장애인들은 그렇수가 없었습니다. 부근 지하철역에서 이용할수 있는 저성 버스가 아예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배차 간격이 몇분이 아닌 몇시간 단위였기 때문이지요. 더 큰 문제는 그곳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고양시 까지 이용 가능하지만, 고양시가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는 야간에 고양시 외부로 나갈수가 없습니다. 농성도 힘들지만 농성하러 모이고 귀가하는 것도 장애인들에게는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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